시적인 순간에 뱉어내는 노래, 시작(詩作)

     
권혁주 

중산고등학교

중산고등학교


5년만에 찾은 모교, 중산고등학교
익숙한 교문 위에 낯선 표어가 인상쓰며 쏘아본다
“학교 전 지역은 금연구역입니다!”
군대 같던 학교, 학교 같던 군대,
이제 보니 운동장도 연병장처럼 처연하다
다른 것은 학교엔 국기게양식이 없는 탓에
태극기가 흉물스럽게 펄럭이는 정도랄까
빈틈없이 걸어 잠긴 중앙현관, 뭐야
요즘은 일요일에 자율학습도 없구나
열린교육인가, 열려진 교육인가, 여하튼
들어갈 순 없어, 중앙현관 유리문 들여다보니
정직, 근면, 성실이란 낡은 교훈은 내 시선을 피하고
처음 보는 못생긴 동상 하나만이 중앙복도에 꽂혀있다
設立者, 그때 그 이사님, 동상이라니 작고하셨는가
텅 빈 운동장은 고교시절 커다란 공백처럼 궁핍해 보이고
잡초처럼 곳곳에 솟은 농구축구골대는 처량하구나
유난히도 미웠던 철봉대와 어설픈 화해를 하고서
떠밀려 씨름했던 모래판 옆 벤치에 모처럼 앉았는데
어디선가 소음처럼 들려오는 제이티엘 노랫소리
학교 담 밖 늘어선 플라타너스는 거지동냥하듯
희뿌연 운동장 위로 낙엽 몇 개, 옛-다, 던진다
아무렇게나 날리는 낙엽의 궤선 따라 주위를 훑어보니
사방이 아파트요, 대모산은 대체 어딨는가!
앞 뒤 좌우가 아파트로 꽉꽉 막힌 이곳은, 중산고
수능에 찌들었던 그때나 사랑에 찢겼던 이때나
말없이 위로해주던 것은 그때나 이때나 하늘이구나
여기 찌들고 찢긴 플라타너스 하나 주워 수첩에 껴 둘까나


200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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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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