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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만화가 닮은 점(경향신문 2014.12.19)
권혁주12-19 22:45 | HIT : 698 | VOTE : 65
"요리와 만화가 닮은 점"

요리가 나오면 주변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항상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사진을 찍는 이유는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려서 자랑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내 사진첩에 저장해두고 나중에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만의 맛집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음식사진을 찍는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내가 먹는 이 음식이 금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깔려있을 것이다. 한때 요리사라는 직업은 자신이 힘들게 만든 요리가 항상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가 없어지는 것을 계속 봐야하니 우울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직접 요리를 해서 지인들에게 대접을 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것이다. 내가 만든 요리를 누군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말이다.
 
내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당시에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매주 2편의 시를 만화로 옮기는 작업을 했었다. 정확한 인관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작업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요리는 여자의 일이라는 기존 가부장적인 가치관에 균일이 생기면서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요리만화를 그리게 되면서부터는 요리가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요리만큼 훌륭한 취미생활은 없다고 단언한다. 요리는 언제든지 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할 수 있으며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요리를 취미삼아 하고 있다고 해서 요리를 잘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요리도구와 식재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마트에 가면 제철음식을 찾으며 식재료를 위주로 물품을 사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우연히 알게 된 레시피는 꼭 어딘가에 메모를 해뒀다가 나중에 한 번씩 따라 해보고,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을 때는 들어간 재료와 조리법을 혼자 상상해보는 정도가 현재까지의 내 수준이다.
 
말이 좋아서 요리이지 실제로 내가 만드는 요리라는 것은 전문가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정도의 유치한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집 식구들에게 나의 취미생활은 꽤나 의미 있는 변화였던 것 같다. 최근에는 딸아이가 “아빠가 해준 파스타가 또 먹고 싶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기분이란, 흐뭇함을 넘어 일종의 성취감이었던 것 같다. 왜 그토록 어머니들이 자녀들이 밥 먹는 모습을 좋아하시는지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기름과 불의 양을 조절하면서 면발의 윤기를 결정하고, 양파에서 우러나는 단맛을 베이스에 깔고서 신선한 토마토와 야채를 차례대로 볶으면 은은한 향이 피어오른다. 적당한 시점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서 소스를 만들고 있으면 어느새 등 뒤에는 아내와 딸이 바짝 붙어 군침을 삼키고 있다. 면발 위에 소스를 얹고 마지막으로 파마산 치즈와 파슬리를 뿌려주면 두 모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지른다. 그렇게 내가 만든 파스타를 두 모녀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히 이런 걸 ‘행복’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충만한 기분이 든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요리사들도 자신이 만든 요리를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분명 기뻐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요리가 만화와도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만화를 그려도 봐주는 독자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그린 웹툰을 독자들이 봐주고 아무런 댓글도 달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런 의미에서 만화도 그렇고 요리도 누군가 맛있게 봐주고 또 먹어줘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 글 : 권혁주(만화가)
2014.12.19 <경향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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