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는 生覺, 암연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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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혼자 그려야 한다(만화규장각 5월호)
권혁주05-28 00:06 | HIT : 130 | VOTE : 4

SITELINK 1 :: http://dml.komacon.kr/webzine/column/28175?__FB_PRIVATE_TRACKING__=%7B%22loggedout_browser_id%22%3A%226e308311ea1502de360803278663033bbbd7d9a6%22%7D&fbclid=IwAR21O7yGYwhdh9lO-Z6rK9WcNAJPp-cQBqaOdgtW2Y
어떻게든 혼자 그려야 한다
-플랫폼 거대화 속 개인 창작자의 미래-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동료작가를 만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다수의 작품을 연재한 경력이 있는 작가였는데 담당PD가 자꾸만 미리보기가 가능한 작품으로 연재제안을 해달라며 너무 “돈, 돈, 돈” 하는 것 같다며 한 차례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시에 나도 <씬커>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세이브 원고는커녕 미리보기 원고까지 모두 소진해버린 상태였고 당연히 미리보기 수익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짐짓 농담으로 “그럼 이제부터 미리보기 없는 작품만 그리겠다고 선언할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미리보기 수익이 끊겨서 어시스턴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다음 달부터 혼자 작업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연재하던 중이었으니 미리보기 원고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차라리 휴재를 하고 당분간 원고 세이브하면서 컨디션 조절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럴만한 여력이 너무 없었다. 결국 어시 없이 분량을 줄여서 혼자 작업하는 방향으로 연재를 강행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는 “분량이 줄었다”, “작가가 초심을 잃었네” 같은 불만들이 쏟아졌다. 그때 당시 솔직한 심정으로는 원고 하단에 있는 작가의 말에 “어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혼자 작업하느라 분량이 줄었습니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그 대신 작업하는 과정영상을 30배속 편집해서 내 유튜브 채널에 매주 올렸다. 그러자 성난 독자들은 “영상 편집 할 시간에 한 컷이라도 더 그려서 분량을 늘여라” 또는 “이참에 웹툰작가 그만두고 유튜버로 전향하라”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마침 그 무렵이었다. 뉴스에서는 유튜브가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치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이 되었다는 기사가 나왔고, 너도 나도 유튜버(Youtuber)가 되겠다며 채널을 개설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던 때였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부터 네이버 웹툰에 신작들이 대거 등장했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씩, 신규작품이 런칭되면서 한 달 정도 소위 “오픈빨”을 받고는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매주 신작들이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는데 짐작컨대 유튜브를 견제하기 위한 네이버의 전략이 아니었나 싶다. 이 시기에 등장했던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었는데 주로 개인창작 작품이 아니라 창작스튜디오나 에이전트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형 기획작품이 많았다. 최근에 웹소설을 웹툰으로 각색하여 연재하는 트랜드도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7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던 작품 수는 200개 초반 수준이었는데, 2018년부터 287개로 급증하더니, 2019년에는 414개, 2020년에는 620개로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경우에 해외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까지 포함하면 대략 2,3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말로만 듣던 “웹툰 1조 시장”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최근에는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국내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으니 문화콘텐츠 업계 종사자로서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개인창작을 하는 작가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개인창작 작가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온도차가 있다. 먼저 웹툰작가들의 수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2019년 기준으로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중인 작가들의 연 평균 수익이 3억을 넘었다는 발표를 한 적 있었다. 당시에는 나도 네이버 연재중인 작가였는데 뉴스 기사를 보고 내 눈을 의심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평균값의 함정’이라는 것이 있다지만 이건 너무 심한 격차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웹툰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창작 작가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만화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대규모 자본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중심으로 인력이 구성되어 미국의 마블이나 DC처럼 스튜디오 제작시스템이 갖춰지고 있는 추세이다. 실제로 최근 만화학과 졸업생들 중에서는 곧바로 작가로 데뷔하는 것보다 에이전트나 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가 팀 단위로 작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독자입장에서 볼 때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만큼 작품의 퀄러티가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창작을 하는 작가입장에서는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주목받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부터 동료작가들로부터 차기작을 연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몇 번이나 떨어졌다더라”, “누구 누구도 이번에 빠꾸 당했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무성하다. 사실 웹소설 시장에서 검증된 스토리를 필력이 좋은 작가와 매칭시켜서 제작되는 작품이 어시도 없이 혼자 작업하는 작품과 같은 연재처에서 경쟁하는 것이 맞는 건지 의문이다. 마치 복싱에서 체급이 다른 라이트급 선수와 헤비급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앞으로는 콘티만 그리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원고를 완성시켜주는 기술까지 등장한다고 하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오늘날 플랫폼이 거대화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이 제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하지만 작가들이 불안한 마음에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분량을 늘이는 지금의 분위기는 누군가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혹자는 웹툰 플랫폼에서 회당 컷수를 제한해서 강제적으로 분량을 낮춰야한다고 주장한다. 스토리, 콘티, 펜선, 칼라, 후반편집 등 각각의 담당이 있을 정도로 인력이 잘 갖춰진 스튜디오나 제작사에서는 분량을 제한하자는 말에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큐레이션 차원에서 작품을 제작방식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 있는 가이드 장치를 마련하면 어떨까? 가령 네이버 웹툰은 요일별, 장르별, 작품별, 작가별 등등의 카테고리가 있어서 독자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큐레이팅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창작에 참여한 인원별로 1인 창작, 2인 공동창작, 3인 이상 스튜디오창작 등으로 구분하여 독자들이 손쉽게 식별해낼 수 있도록 한다면 자연스레 공동창작물과 1인 창작물을 조금은 다른 기준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작가들에게도 컷 수와 분량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호흡으로 연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독립영화를 볼 때와 상업영화를 볼 때는 다른 기대감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의 웹툰에서는 10명이 넘는 스탭들과 함께 일사분란하게 제작되는 작품과 1명의 작가 모든 것을 그리면서 작업하는 작품이 동등한 입장에서 인기순위를 다투며 경쟁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 창작인 웹툰 중에서 초대박 작품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만화의 위대함이 아닐까 싶다.

사실 만화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큰 장점 중에 하나가 바로 “혼자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흔히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는 웹툰, 영화, 애니, 게임과 같은 오락물 중에서 1인 창작시스템으로 산업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웹툰이 거의 유일하다. 물론 혼자 만드는 영화나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웹툰만큼 개인창작이 보편적이지는 않다. 오늘날 웹툰이 문화콘텐츠 영역에서 원천소스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소재와 다채로운 그림체가 함께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웹툰의 다양성을 견인했던 주요한 원동력은 바로 1인 창작시스템이었다. 혹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웹툰보다 웹소설이 작품수가 훨씬 더 많고 소재도 다양하니까 웹소설 원작의 웹툰을 많이 만들면 다양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웹툰, 아니 그 이전에 만화의 본질에 대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만화란 하나의 콘텐츠이기 전에 하나의 언어라는 점이다. 글과 그림 그리고 각종의 기호와 칸으로 의미를 만들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특히 “홈통”이라고 불리는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통해서 독자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독특한 비주얼 언어이다. 그렇다보니 어떤 작가들은 글로 콘티를 시작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또 어떤 작가들은 그림으로 콘티를 짜기 시작해서 말풍선 속 대사를 채워가기도 한다. 물론 쌍방향으로 반복해서 고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만화는 추상적인 글과 직관적인 그림이 상호작용하며 구성되는데 웹소설 원작의 작품을 웹툰으로 각색하는 경우에는 원천적으로 그림이 글을 대체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방식은 차단되어 있다. 때로는 작가들의 그림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재미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스튜디오에서 매뉴얼에 따라 분업화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만화만의 고유한 영역이다. 따라서 아무리 웹툰 시장의 규모가 1조를 넘었다 하더라도 개인 창작자의 입지는 더욱 안전하게 보호해줘야 한다.

스무 살 무렵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되려면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단편영화를 찍는다는 선배를 쫓아서 촬영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주 짧은 씬을 찍기 위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누구는 조명을 들고, 누구는 마이크를 들고, 누구는 크레인을 설치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만화로 그리면 두 컷이면 끝날텐데’라는 생각하며 영화보다 만화가 나와 어울린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혼자 작업할 수 있는 만화가가 되었다. 특히 웹툰은 몇 가지 툴만 잘 활용하면 혼자서도 막강한 작업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자신만의 서사를 풀어가는 것을 “독립만화”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독립만화라고 하면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자비출판하는 흑백만화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1인 창작하는 웹툰작가를 모두 독립만화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밀도가 높고 꽉 찬 그림보다는 낙서처럼 여백이 많고 조금 헐렁한 그림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야 그리는 맛도 있고, 보는 맛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 계속 혼자 그리려고 한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나는 조용히 선언하려고 한다. 앞으로 나는 어시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나만의 그림체로, 나만의 호흡으로, 가장 나다운 만화를 그릴 것이다. 어떻게든 오롯이 혼자 그려야 한다. 마음을 다하여 대충 그리자. 그것만이 지금 같은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 글 : 권혁주(만화가, 공주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
2021-05-22 최종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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